경험이 만드는 취향의 깊이

소비에 실패할 여유 (슬로우뉴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가성비를 따진다 (ㅍㅍㅅㅅ)

두 기사는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최근 몇년 간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구입할 때 실패하지 않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수없이 많은 인터넷 글을 읽으며 소비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이러다보면 소비 상황에서 본인이 갖고싶거나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물건을 구입하는 비중이 낮아지게 되고, 결국에는 소비의 스펙트럼(혹은 소비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좁아지게 된다. 그리고 이 소비 스펙트럼은 결국 그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을 반영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한국에는 ‘가성비’라는 말이 있다면,  일본에는 コスパ(cost performance의 줄임말) 라는 말이 있다. 보통은 코스파라고 읽고, 한국에서는 가성비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단어는 1~2년 전부터 일본 예능이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심심찮게 등장하곤 했는데, 특히 생활용품 쇼핑이나 홍보를 다루는 예능에서 많이 언급되었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예능에서 직접적으로 특정 가정용품 브랜드나 생활용품 브랜드를 특집으로 다루는 일이 많고, 특정 쇼핑몰(이온몰, 코스트코 등)에서 쇼핑하는 장면을 예능에서 다룰 때가 많다. 이런 까닭에 나는 ‘코스파’라는 단어를 일본 예능에서 먼저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야말로 현재의 우리를 가장 잘 대변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더 어리던 시절, 즉 2000년 초중반만 하더라도 우리 또래들끼리 가성비라는 단어를 쓰는 일은 없었다. 학생이던 나는 문구점에서 궁금했던 불량식품, 특히 페인트 사탕과 같이 입의 색이 변색되는 군것질거리들을 부담없이 사먹었던 기억이 있다. 사고싶은 노트나 모아보고 싶은 문구류가 있다면 용돈을 모으고 모아 산 적도 있었다. 부모님은 ‘성적을 잘 받으면’이라는 조건을 걸기는 했지만 내가 공부하기 위해 필요했던 전자사전과 음악 플레이어 등을 사주기도 하셨다. 그 시절 나는 내 호기심을 채워줄 물건들을 많이 구입했고, 그 때까지만 해도 가성비를 따지며 물건을 구입했던 기억은 크게 없다. 이 덕분에 나는 또래 학생들보다 빨리 한국 문구류의 트렌드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블루블랙의 펜 잉크가 실은 펜을 개발하는 기술력이 매우 좋은 몇몇 국가에서만 주도적으로 유통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실제로 일본과 독일을 제외하고는 블루블랙 잉크나 블루블랙 펜을 거의 팔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교에 오고, 내가 학부를 졸업할 즈음이 되면서 우리 또래의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변했고, 내 주위의 많은 친구들은 본인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으며 이를 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내 친구들은 밥을 굶으며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맛있고 값비싼 식사를 즐기며 생활비에 쪼들리는 등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본인들의 소비습관을 정의해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나는 이 때부터 취미생활인 커피를 위해 밥값마저 투자해버리는 과감한 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 당시에는 학교 앞에서 유통되는 드립커피 원두를 거의 다 마셔보았을 정도로 커피에 많은 돈을 썼고, 카페라는 공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나는 이 때부터 내 취향에 맞는 소비생활을 본격적으로 정립해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학교 앞 풍경은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커피를 팔던 가게들 대신에 저렴한 가격과 많은 양의 음식, 음료를 표방하는 가게들이 학교 맨 앞 거리에 앞다투어 생기기 시작했다. 또 극단적인 가격으로 매우 저렴하게 커피를 파는 곳도 많아졌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조미료가 너무 강해 먹고 나면 몸이 가려울 정도인 컵밥집이 들어섰고, 어느샌가부터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싸고 양 많은 음식점”을 찾는 때가 많아졌다. 시내버스 안 광고는 편의점 음식을 싸고 맛있게 먹는 조합을 소개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저렴한 가격과 양으로 승부하는 모 쉐프의 체인점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2년 가까이 계속 되면서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사진들을 찾고, 지도를 본다는 것을 말이다. 내 시간과 돈을 들여 하는 외출에 나의 취향과 안정, 편안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을 반영하고 있는 시대적 비극을 마주했다. 솔직히는 비극이라기보다 슬픔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해보이지만.

우리는 언젠가부터 먹고, 입고, 주거하는 공간에서마저 끝없이 가성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끝없이 치솟는 물가로 인해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점점 줄어갔기 때문이다. 내게 얼마 주어지지 않는 돈 안에서, 실패란 마치 허용되지 않는 선을 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손에 쥐어진 돈을 가능하면 적게 사용하면서 소소한 기쁨을 노리고 싶었을 것이다. 최근 2~3여년간 값비싼 디저트 카페와 가죽 소품들을 파는 공방들이 점차 눈에 띄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백화점의 명품이 아닐지라도, 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비슷한 만족을 추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몇몇 공방이나 옷가게들은 백화점의 상품들과 비슷한 소재/디자인의 상품이라는 점을 굳이 내세워가며 홍보를 한다.

언젠가 소셜 네트워크해서, 기간 한정으로 판매되는 애플파이에 왜 시나몬이 들어있는 것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며 화를 내는 사람을 보았다. 1000원짜리 애플파이에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시나몬이 들어있다는 점이 불쾌했다는 것이었다. 그 글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크게 떠오르는 생각은 “천원이라는 비용조차 실패하기엔 좀 그런가?”라는 점이었다. 그 사람이 아주 조금 더 마음이 여유로웠다면, 천원에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웃어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인터넷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들의 후기를 뒤져가며 “가성비가 좋은 음식”과 “놀잇거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것이 정말로 자신이 즐기고 싶은 콘텐츠여서 찾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한국이 다른 사람들이 해본 것은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언제부터 놀고 먹고 입는 것에 드는 비용에 집착하며 본인의 취향대신 효율성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을까? 나는 이런 사고방식이 만들어지게 된 원점이 궁금하다. 인간이 태어나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으면서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유희가 소비를 통한 취향 확립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마저 붕괴해가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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